 윌리엄 핍스 지음, 신은희 옮김, 이룸 펴냄. Book Review - 이런 책도 있더라~!
예수의 섹슈얼리티 윌리엄 E. 핍스 the Sexuality of Jesus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결혼했다는 명제에 대해 불쾌감과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의 ‘성’에 대한 이슈는 언제나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코드>에서 예수의 독신설에 이의를 제기하고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윌리엄 E. 핍스의 <예수의 섹슈얼리티> 또한 이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으나, <다빈치 코드>가 댄 브라운의 ‘신화적인 믿음’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점과 달리, <예수의 섹슈얼리티>는 역사적 관점에서의 예수, 여러 신학자들의 견해, 그리고 성서 해석과 같은 다양한 측면에서 예수가 왜 결혼했다고 보아야 하는지 <다빈치 코드>보다 더욱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다. <예수의 섹슈얼리티>의 저자인 윌리엄 E. 핍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제와 결론’ 방식을 통해 ‘예수의 결혼설’을 다루고 있다. ‘전제와 결론’방식은, 자신의 주장과 대립되는 주장의 전제를 기술하고 이에 대해 반론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9장 12절의 내용, “모태로부터 그렇게 태어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들어서 된 고자도 있으며, 또 하늘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도 있다.”라는 성경 구절을 가지고 예수가 독신이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주장의 전제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다음에 이를 반박하는 성경해석을 통해서 “신약성서에서 예수는 고자가 되는 것을 장려하지 않았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예수의 결혼설에 대한 반론을 펼칠 때 이 주제에 대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마도 ‘예수가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성경에 나와있지 않다. 그러므로 예수는 결혼하지 않았다’라는 주장일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성경에 나와있지 않다고 해서 예수가 독신이었다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미소를 지었다거나 큰 소리로 웃었다는 기록 또한 없다. 그러나 그런 성서의 침묵이 예수가 평생 단 한 번도 기분 좋게 웃은 일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예수가 아팠다는 기록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모든 바이러스에 면역됐다고 볼 수 없다. 또한 그의 배설 기능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역사적인 인물들의 생애와 마찬가지로 복음서에는 예수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장면들만 있을 뿐, 예수의 배설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만약에 성서에 나와있지 않다고 해서 위와 같은 것들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예수가 “실제로 인간이 아닌 ‘인간인 것처럼’ 보이게 한 것뿐이었다”라고 하는 ‘가현설(docetism)’로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성서의 예수의 독신에 대한 침묵은 오히려 예수가 결혼했을 가능성이 더 많았음을 알려준다. 그것은 예수 당시의 팔레스타인 문화 속에서 드러난다. 예수는 유대인으로서 살았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주변 환경에 대해서는 그리 깊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혹자는 예수는 특별하기 때문에 유대의 전통에서 벗어났고 오히려 유대의 전통에 반대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유대교 랍비였던 아키바는 예수의 정신적 기초는 유대교에 있다고 설명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유대교 율법의 계명이었다. 예수가 살았던 유대 문화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다섯 가지 의무 사항이 있었다. 요약하자면, 모든 유대인 아버지는 아들의 1)할례를 책임져야 하며, 2)아들을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하며, 3)율법을 가르치고, 4)기술을 가르치고, 5)결혼을 시켜야 했다. 유대인 남성의 경우 율법 해석가가 되고, 기술을 가지고,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면, 30세가 되어 비로소 권위 있는 인물로 인정받았다. 특히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면 반드시 결혼하여야만 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가 30세가 되면서 사역을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 시대에 ‘랍비’라는 호칭은 유대 문화권에서는 최고의 선생을 일컫는 것인데, 복음서에는 예수를 랍비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열 두 번 이상 등장한다. 이는 예수가 랍비로서 존경 받을 만한 인물이었으며, 유대인으로서의 의무를 모두 실행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예수의 결혼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오히려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신학자 찰스 데이비스는 “예수가 유대 문화권에서 독신을 주장했다면 그것은 대단히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을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기록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만약에 예수가 결혼하였다면 예수 같이 특별한 사람의 아내가 왜 언급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하나는 당시의 남성중심적인 문화에서 역사를 기록할 때에 여성들을 기록하는 경우는 주로 정상 문화에서 이탈하거나 악명 높은 여성들이었고, 평범한 아내와 어머니 혹은 여동생들을 기록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 예수의 아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독신일 가능성도 있지만 평범한 아내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다른 한가지는 당시 문화에 있어서 결혼은 지금의 문화와 같이 개인적인 부분이 아닌 한 집안 대 집안의 약속이었다. 그래서 당시 문화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의 배우자를 아들과의 논의 없이 결정하였다. 마지막 다른 가능성은 성경의 편집은 예수 사망 후 한 세기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 시작되었는데, 그 때의 기자들은 유대 문화와는 또 다른 성 문화의 인식을 갖고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설사 예수의 아내와 자녀에 대한 언급이 있었더라도 그 부분을 삭제하였을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이다. 만약 예수가 독신이었고 독신의 삶이 기독교인들의 모델이라고 가르쳤다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예수의 가르침과 모순된다. 바울은 결혼에 관한 가르침을 ‘주님의 명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바울의 독신에 관한 의견은 자신의 것이지 예수에게로 받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그는 결혼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들을 보면서 독신의 편리함을 언급하였을 뿐이었고, 독신 생활을 어떤 ‘경건함’과 엮으려고 하지 않았다. 많은 한동인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먼저 거부감부터 들 것이다. 이러한 거부감은 ‘예수의 결혼’이라는 주장이 기독교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는 어떤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로는, 신학적으로 전통 기독론과 역사 예수의 결혼설은 대립되지 않는다. 카톨릭 신학을 이끌었던 찰스 데이비스는 예수의 독신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결혼’과 ‘신의 아들’이 병행할 수 없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성공회 사제들은 ‘예수가 모든 소년들이 경험하는 자위 행위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충격적일 것’이라고 말하였다. 5세기경 칼케돈 회의에서는 “우리와 같은 인간의 본성을 가졌다는 의미는 죄를 제외하고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았다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신약 성서의 히브리서는 예수의 인성을 확인해 준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히 4.15)” 이는 예수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유혹을 받았고 영적인 도전도 받았다는 증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는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결혼했다는 명제에 대해 불쾌감과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 예수의 성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리는 이유를 서양 정신사의 근본인 그리스 철학에서 찾고 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였다. 피타고라스, 플라톤은 모두 성적인 갈망을 금기시 여겼으며, 심지어 에피쿠로스 철학에서는 성욕을 ‘질병’으로 생각하였다. 초기 기독교 교회는 고대 유대 문화의 배경에서 성장하였지만 이방 문화와 접촉하면서 교회는 그리스 문화에 젖어 들게 되었고, 교회에서는 그리스 철학의 인간 이해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인도 힌두교, 조로아스터 교, 마니교 등의 금욕 전통 또한 교회로 스며들게 된다. 결국 많은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성적 금기는 서양 역사 속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서양 철학자들과 아시아 종교의 영향은 기독교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가장 권위 있는 성서 해석가였던 제롬과,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어거스틴과 같은 사람 또한 이러한 사상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현대 철학의 거장들도 이를 받아들여, 칸트는 독신 생활이 더 깊은 지적 탐구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하였으며, 쇼펜하우어는 독신이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표현하였다.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니체는 결혼이 자아실현의 장애물이 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서양의 전통이 고스란히 우리에게도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책의 막바지에서 예수가 독신이었을 수도 있고, 결혼하였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양쪽 모두 다 증거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예수는 결혼하였다!”라고 결론짓는 것이 아니다. 예수가 결혼하였다는 이론이 결코 기독교의 전통과 대립되지 않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의 독신은 성서해석적인 산물이 아닌 원래의 기독교 전통과 대립되었던 다른 ‘이방’ 전통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밝힌 책인 것이다. 이 책은 예수의 독신설에 대한 약 13가지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있는 데 비해 이 리뷰는 한 두 가지의 반박만을 담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성경을 인용하여 예수의 결혼설을 반박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나, 이 책은 흔히 ‘예수가 독신이라는 주장을 뒷받침 해준다고 생각하는 성경구절’에 대한 성경해석들을 다루고 있으므로, 이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 책을 다 읽어 보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이진일(경영경제학부 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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